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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
작가노트1

산수나 화조로 상징되는 한국화가 자연주의를 넘어 시대와 역사의 삶을 담아내려는 명실상부한 현대 한국화로 발돋음한 것은 80년대적 상황의 산물로 평가되어 오고 있다. 즉 이는 비단 수묵이나 지필이라는 재료의 외연 확대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지금 여기에서의 한국화의 의미를 묻은 물음으로써 제기되어진' 세계관의 해체나 재건립을 중심으로 전제되어온 보다 넓은 의미의 명제를 둘러싼 논의 산물로서 주어졌다는 것이다.

본인의 작업의 지평은 이러한 시대적 문제 제기로서의 화두로부터 연원한다. 이를 위해 초기 작품들에서는 신화나 전설의 은유로서 소나무, 닭, 석불들이 인간의 또 하나의 표정이나 상징으로서 차용되었으며, 그것은 전통의 해체적 징후를 표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세계언어'로서의 코소모폴리탄적 미술언어라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되지만, 모든 종류의 파산신고로서의 해체 또한 '현대한국의 언어' 또한 아님은 명백한 사실이라 했을 때 '역사적인 지금 여기'의 조형언어에 대한 모색이어야 했다.

그것이 본인이 궁구하고자 한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반추(反芻)의 장(場)으로서의 화면이다. 반추의 기획(project)은 시간적 축과 공간적 축의 두 계열 점들로서 축조된다. 먼저 그것은 시간적 축을 통해서는 뿌리 혹은 원근법적 시간으로서의 사물에 대한 자명한 이해를 거부하고 분할하는 화면구성으로 나타난다.

이는 형태 분석적인 사물의 재배열을 통해 시각의 풍경이 아닌 '시간적 상상력의 풍경'으로 전치(傳置)되거나 혹은 비현실적인 사물의 원형이 분할적으로 보여지기 위한 전략적 배려로서 고안되었다. 이를 통해 역사적인 시간과 '나'의 현실적인 시간은 '상호 신체적'인 지평 속에서 만날 수 있고, '나'의 반추는 '우리'의 반추로 화(化)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간적 축은 물리적 외부 공간과 마음의 구조로서의 내면 공간과의 집면으로 구축된다. 그것은 '집단 무의식'에 가까운 원형으로서 민족적 경험의 총체라는 시원의 지점에서 만난다. 예컨대 직관이나 오성을 통해 표상되는 신체의 지각이라는 현존재의 공간은 '본다'는 행위 자체에 내속되어 있는 '시각적 판단'이 이미 개입되어 있다는 중첩된 공간 개념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추의 장'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즉 이러한 각각의 계열들이 근원적인 동일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변화 가능한' 속성과 공간의 '광대 무변한' 속성들 속에 내던져진 물질들의 생성원리리로서의 공(空)의 모습이며, 그것이 본인의 '여백'에 대한 지향점으로 요약된다.

때로는 우람한 선지자 같은 소나무로 때로는 이름없는 들풀들로 의인화되는 역사와 자연의 유기체성인 것이다. 유기체체이되 무기체의 속성을 끝없이 환기하는 회귀(回歸)로서의 끝나지 않을 과정적 행위, 이는 '그림 그리기'로서의 끝나지 않을 본인의 회화에 대한 원론적 질의사항이기도 하다. 예컨대 그림그리기로서의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 물음으로써의 한국화의 지평은 또하나의 본인의 회화적 태도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본인의 논리적 귀결은 '여백', 즉 시공간적 계열들의 회류(回流)의 지점으로서의 여백에 대한 탐구에 당도해 있다. 그것은 서양화의 어법으로 얘기하면 사실에 바탕을 두거나 대상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지고 매체의 자율성에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것, 즉 "형(形)을 구차히 않고 뜻(意)을 구한다"는 뜻일진대, 그것이 형상들을 넘어서 있는 원형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본인의 연구 목표이면서 과제임도 엄밀한 사실로 전제되고 있다.

문인상 關我軒에서 

작업노트2

美的 사고를 통한 하루

겨울을 맞이하기 전 늘 난, 어릴 적의 겨울을 먼저 생각해 본다.
연날리기, 눈싸움, 얼음치기…
그렇게도 겨울의 무서움(?)에도 별로 굴하지 않았던 시절을…
그렇지만 올 겨울은 아무런 대책 없이 맞이해 버렸다.
새해가 되면 곧 나를 알리는 전시회 몇 건이 있기에 온통 머리 속이
'그림'이라는 주제로 가득 메워져 언제 겨울이 왔는지도 모르게
허무하게 겨울을 맞이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게만 느껴진다.
내리는 눈도 별로 반갑지도 않고…
그래도 날 유난히 반겨주는 것은 이 공간에 저 아름다운 자태로
곧게 뻗은 난초이다. 유일한 생명력을 가진…
하지만 곧 난 가슴 아픔에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저 난초가 자신을 생을 끝내기 위해 이미 뿌리부터 삶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보여지는 모습은 그렇게도 아름답지만… 

·새해 둘째 날 솔잎 한 뭉치를 샀다.
우연한 기회에 솔잎차를 먹어본 후 그 맛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물어 솔잎을 구했다.
끓이기도 너무 쉽고 맛도 근사해서… 하지만 솔잎은 반드시 새순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 겨울에 난 귀중한 것을 또 내 것으로 만들었다.
세상에 무엇 하나도 소중하지 않을 것이 없다.  

·소나무를 그리고 닭을 그리고 말을 그린다.
해가 있었고 달이 있었고 구름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있는 것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 오래 전부터 내게 있었다.
그것에 대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난, 늘 그것들에 대해서 방관적이기를 원한다.
그것이 가장 내 것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사랑을 많이 담아 버린 것에 대해서는 욕심이 많이 보인다.
그림에게도 적당한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모자른 듯 하면서도 채워져야 그림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차례가 있고 순리가 있듯이…
그렇게 올 겨울의 반은 내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보냈다.
입춘이 지난지도 꽤 되었지만 여전히 동장군을
이곳에 무얼 더 두고 가고 싶은지… 

·돌부처를 그린다.
부처를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이미 부처가 된다.
아무 말 없이 온화한 표정을 갖고 있는 저 돌부처,
난 돌부처의 저 표정 있는 얼굴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다.
합장을 하며 서 있는 저 모습을 난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