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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
건강한 자연, 내밀한 생명의 뜰에서

김상철(미술평론)

  정연한 질서의 침착하고 안정된 색감이 돋보이는 작가 문인상의 작업은 자연에 그 근본을 두고 있음이 역력하다. 풋풋한 야생화의 자태에서부터 갖가지 다양한 자연의 양태들을 개괄하여 표현하고 있는 그의 작업은 일정한 서정의 안온함을 지니고 있다. 이는 야생화로 대변되는 자연을 소재로 한 화면에서 비롯되는 시각적인 내용들을 통해 감지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그러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의 화면은 자연의 작고 소소한 부분들을 아우르고 있다. 가냘픈 풀잎과 이름 모를 작은 꽃, 그리고 잠자리와 나비 같은 작고 부분적인 것들을 통해 그는 자연을 읽어내고 계절을 감지해낸다. 굳이 자연의 위대함을 강조하지 않지만 그의 작업 속에는 정녕 건강한 자연의 편린들이 채집되어 기록된 건강한 자연의 외경을 담고 있다.
 개괄적인 간략한 형상들은 생태나 객관의 조건에서 벗어난 개괄적이고 함축적인 부호로 표출되고 있다. 그것은 천진한 낙서처럼 풋풋할 뿐 아니라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다. 눈길이 미치는 곳마다, 또 손끝이 닿는 곳마다의 작고 소소한 내용들을 세심하고 채집하고 이를 나열함으로써 그의 화면은 꾸며진다. 그것은 정원사에 의해 가꾸어진 화려한 인공의 정원이 아니라 꾸미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아 소박하지만 건강한 생명력을 지닌 전원의 뜰이다. 과장하여 강조하거나 왜곡하여 꾸미지 않고 담담하고 침착하게 자연의 이미지를 채집하고 이를 부호화하여 기록하는 그의 작업은 담백하다. 기교를 배제하고 형상의 번잡스러움을 개괄하여 부호화한 그의 작업은 자신의 시각이나 입장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부호화된 최소한의 상징을 통해 소박하지만 건강한 자신의 뜰을 가꿔내고 있다. 형상과 형상, 사물과 사물 사이의 공간을 메우고 여백을 읽어내어 그 뜰에서 건강한 생명력을 찾아내고 또 깃들게 하는 것은 보는 이의 몫일 것이다.

 작가는 자연을 원형의 구조를 통해 수렴해 내고 있다. 그것은 일정한 규격과 질감을 지닌 독특한 것이다. 대상의 내용이나 특징에 관계없이 모든 것을 이러한 원형의 구조 속에 수렴하여 일정한 패턴을 형성케 함으로써 그의 자연은 구체화된다. 분방하고 자유로운 자연의 양태에 비해 이러한 원형의 화면 구성은 다분히 규격화된 기계적인 것이다. 인공과 자연은 그렇게 조화를 이루며 일종의 리듬과 같은 운율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살랑대는 바람이며 흔들리는 들꽃이다. 또 그것은 아스라한 곳에서 들려오는 멧새의 지저귐이며 나비의 여린 날개 짓이다. 이는 분명 서정의 은근함과 자연의 풋풋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개괄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으로 인하여 또 다른 엄정한 질서를 구축해 낸다. 이는 자연이라는 객관을 자신의 뜰로 끌어들여 주관화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그의 화면이 분방하고 자연스럽지만 방만한 것으로 흐르지 않고 정적인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영의 결과일 것이다. 그것은 인공과 자연, 작위와 무작위의 절충과 조화이다.
 작가의 뜰, 건강한 자연은 독특한 깊이와 무게를 지닌 색감에 의해 지지된다. 그것은 반복적인 작업 과정을 거쳐 구축되어지는 색채의 심미이다. 일정한 단계를 축적하는 동안 그의 화면에는 시간이 축적되고, 이는 선후관계에 의해 드러냄과 감춤이라는 이중적인 화면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화면 속에는 침잠된 깊이를 지닌 숨은 그림처럼 다양한 자연의 실루엣들이 담겨져 있다. 굳이 형상을 드러내지 않고, 특정한 사물을 설명하지 않지만 이러한 그림자 같은 이미지들은 정형화되고 패턴 화되어 경직될 수 있는 화면에 풍부한 운치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자연의 여분일수도 있고, 육안이 아닌 감성으로 인식되어지는 자연의 또 다른 모양일수도 있다. 또 이러한 실루엣들은 작가가 지향하는 자연에의 초대를 구체화하는 내밀한 부호나 표식 같은 것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분방하고 여유로운 표현에 드러내기 보다는 감추고 숨김을 전제로 한 형상들은 서정을 더욱 농밀한 것으로 이끌 뿐 아니라 보는 이에게 해석의 여지를 담보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축적되어진 시간은 화면에 안정되고 명징한 색채를 담보해 주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구축되는 허실의 관계일 것이다. 정형화된 원형의 구조물들은 분명 정연한 질서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작가의 작의를 반영하는 실(實)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를 지지하고 있는 독특한 깊이를 지닌 색채는 허(虛)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은밀한 숨김과 같이 화면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의 이미지들은 그저 여백의 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실의 내용으로 변환되어 읽히기도 한다. 어쩌면 작가는 표현되어진 자연의 구체적인 형상이나 패턴 화된 양식보다는 이러한 은닉된 이미지들을 통해 풍부한 자연의 천변만화하는 표정을 표출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작업이 단순한 자연의 예찬이거나 서정, 혹은 상투적인 야생의 기록으로 읽히지 않고 내밀한 서정의 운율과 리듬으로 다가올 뿐 아니라 독특한 여운을 제공해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일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의 모든 문명행위의 근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무한한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 역시 이러한 자연의 일단을 섬세하고 개별적인 감성으로 포착하여 개괄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연을 반영하고 있다. 무한한 변화와 풍부한 표정을 지니고 있는 자연을 대면하는 작가의 기본적인 도구적 수단은 먹을 비롯한 전통적인 표현 방식이다. 또 이를 통해 표출해내는 자연의 미묘한 표정들 역시 전통적인 회화의 그것을 원용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안정적인 화면을 담보해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만약 작가가 보다 전향적인 시각으로 자연을 해석하고 이를 수용해 내고자 한다면 고전적인 조형방식의 안정성 보다는 이에 걸 맞는 새로운 표현 방식이 필요할 것이라 여겨진다. 여전히 부분적으로 감지되는 필묵의 여운과 형상에 대한 부담감을 확대해석하여 해소할 수 있다면 작가의 뜰은 보다 화려하고 풍부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그랬듯이 무수한 영감을 내재한 채 그것을 발굴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기다리고 있다.

삶  그 시도 그리고 반추
김 은 영(불문학박사)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감상하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시도될 수 있겠지만 문인상 작품의 특성을 고려하여 전체적인 조망에서 개별적인 조망으로 서술해 나가고자 한다. 문인상의 미학 세계는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가 획을 긋고 있다. 이 획은 변천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 그의 초기 작품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인 환경과 개인적인 현실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연계성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 그가 그려낸 인물의 군상들은 일제히 시선을 밑으로 향하거나 그 방향을 허공에 두고 있다. 사물을 응시하지 않는 시선‥‥ 현실 도피인가 아니면 보지 못하는 소경의 이마쥬? 아니면 차마 즉시할 수 없는 현실의 아이러니인가?
그 당시 그가 그린 모든 삶의 장들과 서민의 모습들은 사실주의화되어 절망의 늪에서 달음질칠 수도 없는 정지된 표현의 무대였다. 혼돈의 시대에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한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와 같은 그의 표현의 장들이 93년부터 자연을 소재로 한 상징적인 오브제들을 등장시킴으로 서서히 내면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작가 내면의 정서, 주관적으로 해석해 보려는 삶 그 자체가 주제가 되어 여러 가지 다양한 흐름을 지금까지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해마다 '삶반추의 장'은 새로운 발견을 거듭하고 있다.  

이 새로운 오브제들말, 학, 닭과 소나무와 달은 인간에서 회자되었던 그 상징적인 의미 체계와 또 작가 자신이 이 대상들에게 부여한 의미와 함께 작품을 더욱 다양화시키고 복합적인 구성으로 개별화시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반추의 장'은 새로운 소재들과 더불어 그의 삶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소나무의 푸른 잎을 보자, 그 빽빽한 잎은 사시사철 늘 푸른 모습을 간직한 채 새로운 싹을 내보내고 있다.
그 잎새 하나 하나가 피어있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그 모양새가 제각기 들쑥날쑥하다.
작가는 이 모습 하나하나에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터가 박혀 있다고 한다. 인생이 굴곡과 고통을 통한 자아의 모습이 거기에 배어 있다고 했다. 특히 '백송'을 통하여서는 줄기가 하얗다는 점을 들어 '원초적인 무(無)에서의 출발' 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점에서 다소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는 무(無)에서 생명으로의 반전을 주지해보자. 들의 풀이나 작은 꽃들, 민들레 등의 소재는 경이로운 '생명력'에 대해 작가의 내면의식을 표출했다. 너무나도 작아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면면히 그 자태를 드러내며 문득 우리의 시야에 꽃이듯 들어오는 그들의 존재는 땅에 깃든 축복에 대해 감탄을 터트리게 한다. 여기서 주의를 끄는 점은 이러한 소재들의 등장이 결코 근거 없는 갑작스런 출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배경이 되는 구름이나, 산, 바위 등 그 원형의 근원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돌출 된 하나의 표징이라 할 수 있다. 존재의 공간이 되는 이러한 배경들은 인간의 최초의 거주지, 즉 어머니의 태내를 상징하는 생명의 틀이며 영혼의 이마쥬이자 이야기의 출발이 된다.
수레바퀴의 삶속에서 본능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그곳은 영원의 안식이 깃든 곳이리라. 그것은 곧 작은 생명체를 발견하고 그 본질을 찾아보려는 작가의 탐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문인상의 화폭에 담긴 '삶반추의 장' 연작들은 내면 세계의 의식의 흐름을 그림이란 '창'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접근시킨다.   

때론 그 그림속에서  비록 그림이란 공간으로서밖에 전재하지 않지만  시간의 흐름과 리듬을 읽을 수 있다. 이미 화선지를 여러 겹 구기거나 포개어 접착시키기도 하고 먹과 아크릴, 과슈 등을 이용하여 중첩된 밑그림을 표현화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상의 확장은 화면 분할을 통하여 더욱 시간성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의 시간을 현재화하기도 하며 화면을 통하여 이마쥬와 이야기와 구성을 재생시키기도 한다. 이점에서 다소 작품의 세밀한 짜임새가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되돌아보는 삶 -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

김이천 / 미술평론가 

오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찾은 곳은 팔당역 근처의 산마을 초입이었다. 그곳은 높고 낮은 몇 개의 산봉우리가 배경을 이루고 짙푸른 녹음과 계단식 논밭이 주변을 뒤덮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모습을 하고 있었다. 황토빛 길 위에 겹겹이 뿌려진 하얀 감꽃과 녹색 잎사귀 속에서 더욱 붉어진 장미꽃이 시야를 벗어나 잔상으로 남아들기 시작할 무렵 발길을 세웠다. 소 외양간을 개조한 30여 평 크기의 화실이 발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작가 문인상은 작년 3월에 서울 잠실의 화실을 처분하고 이곳에 새로이 창작의 둥지를 틀었다. 서울 시절의 마감이자 팔당 시절의 개막인 셈이다. 이처럼 환경적으로 한 시대가 교차하는 것인 만큼 작품도 변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화실 문턱을 넘어섰을 때 눈동자 속으로 빨려든 것은 1호에서 1000호까지의 다양한 크기의 많은 작품들이었다. 그 작품들 대부분은 짧은 팔당 시절에 이루어진 것들이었음은 물론이다. 그 새 시대의 작품들은 이전 작품에서 진보된 새로운 변화로써 예비한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예술에 있어서 변화, 새로움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변화는 새로워지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낡은 것을 허물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일종의 자기혁신 같은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꾀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몸에 익숙해진 행동 양식과 주어진 의식 체계는 일시에 바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술은 변해야 한다고 믿는다. 시대가 변화하듯이 변화는 자신 발견에서부터 시작된다. 자기 발견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이해와 보다 풍부한 지식과 정보의 축적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시키려는 의지와 실천력이 요구된다. 
사실, 주변에서 변화하지 않는 수많은 작가들을 보아왔다. 변화에 대한 능력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 능력이 충분함에도 결과적인 위험부담을 우려한 탓에 변화를 주저했던 것이다. 위험 부담이란 변화를 갖기 전보다 질적 수준이 떨어지거나 그 동안 쌓아온 상품적 가치의 하락을 뜻한다. 어쩌면 전자보다는 추자가 작가의 변화를 막는 더 큰 원인일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변화하지 않고 수 십 년을 똑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일관하는 작가들을 두고 '천착(穿鑿)'하는 작가로 미화시키기도 한다. "어떤 사물에 깊이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천착도 변화가 전제되어야 제대로 되는 것이다. 천착은 이미 쌓았던 업적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다 강화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그 과정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변화의 과정이어야 한다. 

작가 문인상은 이러한 변화와 천착사이에서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해왔다. 남도지방의 수묵화가였던 아버지로부터 먹을 다루는 끼를 물려받았던 작가는 남도특유의 문인화와 전통 수묵화법을 부지런히 다지기 시작했다. 화가 지망생들 대부분이 수채화를 전공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그는 남종화풍의 실경 산수를 그려 각종 실기대회에서 큰 상들을 일궈내기도 했다. 수채화를 전공하는 동료들과는 달리 선배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소외감을 많이 받았을 터이지만 그는 수묵화를 전공으로 삼아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 후의 주변환경은 그를 가만 놓아두질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고향광주가 80년의 아픔에 휩싸인 것이다. 광주의 충격은 그로 하여금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 자연스럽게 버림받고 소외된 삶의 현장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행상, 노인, 광부 등 서민의 삶과 그 삶의 터전인 산동네, 공사장, 판자촌 같은 풍경들을 이미 쌓은 전통 수묵화의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렸다. 그것은 자신과 같은 밑바닥 인생의 삶은 고뇌에 차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표상되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들은 이전의 부드러운 필치의 실경 수묵화와는 달리 점차 강한 필력으로 드러났다. 

고뇌와 고통의 나날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서민 삶의 의지, 희망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그는 과거의 관조적인 자연 사생에서 현실 참여적인 인간 형상의 표상으로 작품의 변화를 꾀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의 첫 변화였다. 

그러나 이같은 자연에서 인간으로, 관조에서 현실 참여로의 의식과 표현의 전환은 보다 강력한 조형수단을 요구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이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자신의 조형 언어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 주류로 작용했던 수묵담채 기법을 조금씩 버리는 대신에 다양한 색채의 사용빈도를 높여갔던 것이다. 이제는 먹빛보다는 채색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전통 한국화의 재료와 도구뿐만 아니라 아크릴릭이나 나이프 같은 서양화나 조각의 그것들까지도 주제의 조형적 표현을 위해 이용했다. 이제 가는 주제소재의 변화뿐만 아니라 조형어법까지 변화시키는 과감한 자기혁신의 꾀하게 된 것이다. 
작품의 주제인 인간을 형상화함에 있어서도 그는 이전의 사실적인 모사(模寫)중심의 작업태도를 버리고 생략과 왜곡의 주관적 표현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미지의 왜곡과 생략은 사실적인 그림보다는 더욱 보는 즐거움을 주기 마련이고, 직설이 아닌 이상 그 의미파악을 위한 생각과 유추를 이끌어냄으로써 작가와 관객간의 새로운 소통을 열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쉽게 무엇이구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자체의 이미지와 주변 이미지 간의 상관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감상하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 만큼 작품의 의미는 은유적이고 풍자적이고 상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형상의 왜곡과 생략으로 인간 삶을 긍정보다는 부정과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같은 어둡고 무거운 인간 형상의 그림은 앞서 얘기했듯이 광주의 아픔과 무관하지 않다. 그 역시 그다지 화려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팔당 시절 이전에는 참으로 많이 전전긍긍했다. 선배나 동료의 화실 신세를 지면서 작품을 했는가 하면, 그나마 친구의 도움으로 작은 건물의 옥상 층에 마련한 화실마저도 불에 타 작품과 책, 자료들을 잃는 아픔까지도 겪었다. 또 그 아픔 뒤에 얻은 서울 신천의 화실도 새마을 시장을 끼고 있어서 역시 소외된 일상들을 자조 접하는 곳이어서 그 소외와 아픔과 치열한 일상들이 작품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자신과 주변의 "삶을 되풀이해서 음미하고 생각"하면서 그린 '삶반추(反芻)의 장'연작들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실험적인 어두운 작품들로 92년에 관훈미술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반추의 그 주체는 당연히 작가 자신이다. 그러나 그는 작품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만 여기지 않고 서민의, 대중의, 우리 모두의 삶으로 설정했다. 왜곡과 생략의 인물 형상으로 표상된 어두운 그림들은 현대인의 해체된 자아, 실존적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짙게 깔고 있다. 
 2년 뒤에 가진 두 번째 개인전에서 그는 또다시 변화를 꾀한다. 인간에서 자연으로 관점을 옮긴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수묵담채화로 그렸던 그런 관조적이고 낭만적인 풍경으로서의 자연은 아니다. 앞서의 인간(실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여전히 그 내면에 녹아 있다. 이전에 가끔 보였던 소나무나 닭 돼지 달 산 연꽃 대나무 구름 등의 자연이 인간과 교감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여전히 자신의 반추하는 삶이 주제로 은연중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다시 1년 뒤 그는 보다 다양한 색채의 작품으로 세 번째 개인전을 연다. 다양한 색채 사용에도 화면은 밝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지난 개인전보다 인간 표현이 상당히 줄었다. 그리고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운주사의 석불들이 절 연꽃 말 목어 등의 불교적 상징물과 함께 등장했다. 그는 이제 관심사를 자신과 현실로부터 역사적 산물인 전통에까지 확대한 것이다. 
 그는 현실 세계의 또다른 갈등 구조인 현대와 전통의 문제를 화두로 끌어올렸고 이후 신화와 전설까지도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제 그의 작품은 비판적이고 왜곡된 인간 형태가 사라지고, 대신에 관조적인 자연풍경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자연은 인간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삶과 역사와 깊게 관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나무 구름 바위 산 달 별 닭 말 대나무 등의 자연 속에 역사의 의미를 담아냈다. 자연과 역사의 조화가 이뤄진 셈이다. 

지난 96년 다섯 번째 개인전에 이어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러한 지금까지의 작품변화'자연>인간>인간+자연>자연+인간+역사'를 읽게 한다. 겹겹이 화선지를 붙이고 그 위의 주름과 마티에르 위에 되돌아보는 삶을 심는 그의 작품들은 이제 '고뇌와 고통'의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곳이 아닌 '인간회귀'의 자연 내음이 진한 팔당의 화실에서 제작되고 있다.
 팔당 시절의 그림은 우선 색채가 밝아졌음을 느끼게 한다. 예전의 검고 어두운 무채색 계열의 색채가 줄어든 대신에 밝고 원색적인 색채가 화면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만큼 작품은 명랑하다. 그리고 화면의 운용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어머니의 태내(胎內)같은 형상이나 의도적인 화면 분할이 이전의 작품과 궤를 같이 하고 있지만, 자연의 장식적인 표현과 우주의 기호적인 표현이 화면에 새롭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끊임없는 실험의 정신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연속의 과정으로서 이해된다는 것이다.

문인상의 역설, 구성*構成)의 욕망, 혹 욕망하는 구성을 통해 지필묵의 전통으로 되돌아가기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미술평론 

오늘의 의미로 되묻기
문인상의 회화는 전통산수화가 자연을 취하는 방식에서 자양분을 취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 교훈을 반추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출범하게 했던 그것으로부터 떠나고자 부단히 애써 오기도 했다. 문인상이 지필묵 사상의 뒤쳐지지 않는 옹호자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없지만, 그것이 전통의 미명으로 자행되는 교조주의적 반복을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여기서 지필묵을 운용하는 주체, 그 운용을 통해 비로소 그것이 존재의 한 첨예한 방편이 되게끔 하는 그런 주체를 결여한 전통은 고작 수구에 퀘퀘한 이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인상은 그 지점을 다음과 같이 짚고 있다.

"나는 지필묵이란 전통을 오늘의 의미로 되돌려 묻는다."

하지만, 이렇게 지고의 역사를 현재에 응집시킬 것인가? 어떻게 부단한 진행을 하나의 정지된 시점과 공존시키고, 그 위에서 스스로를 드러내게 할 것인가? 

회화의 자연-스스로 그렇게 되어가는-에 대하여
문인상은 질문을 던졌던 바로 그 시점에서 부단히 답을 모색한다. 그리고 면면(綿綿)한 문인화 정신, 지필묵의 전통에서 작가는 새로운 시대를 열 '소요의 미학', '방임의 시방식'을 발견한다. 실로 그에게 전통은 관조와 몰입, 사물과 사의(寫意) 간의 깊고 오묘한 보고(寶庫)였다.

이 전통으로부터의 사유는 미술에 통째로 자연의 개념을 이식시키려 했던 서양미학, 특히 급기야 미술에 고도의 자율성을 부가하기에 이르렀던 모더니즘 미학의 그것과는 극히 상반된다. 돌이켜보자. "미술은 그 자체며, 그 자체가 되어가는 것이 궁극"이라는 모더니즘의 미학적 사유가 이 얼마나 매섭게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질타해 왔던가. 개괄해보자면, 서양미술사는 미술을 '고도의 자연' 즉 스스로 완성되어가는 것으로 규정하기 위해, 정작 자연의 미(美)와 그에 대한 경외심을 타락시켜 온 편협한 연대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양미술사는 이 두 자연 간의 지루하고 공허한 갑론을박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문인상이 언제나 돌아와 새 출발을 다짐하는 문인화의 사유에선 이 두 자연은 상호대립적이지 않다. 여기서 예술은 자기 자연 안에 자폐되지 않아도 되고, 또 자연에 대한 깊은 경의가 인간이 심오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이 두 세계 간의 이분법은 허무맹랑한 가정이요, 인식의 피상성이 헤집어놓은 혼돈에 지나지 않는다. 문인상은 자신을 덜 개입시킴으로써, 인식을 절제하거나 후퇴시키는 방식을 통해, 회화의 자연을 실천해 왔다. 그것은 회화 스스로가 어떤 '자발적인 차원' 즉 싹이 트고 자라 꽃과 열매를 맺는 것 같은, 자체 내에 완성을 지향하는 에너지를 지니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회화를 자연에 바짝 밀착시킬 수 있었다.

회화에 자연의 '스스로 완성되어가는 속성'을 실현하기 위한 작가의 방식은 두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는 무념무상에 이끌리는 붓질을 끝없이 반복하고 채색의 층을 더해 가는 것이다. 이에 의해서는 의도하지 않은 임의의 한 시점에서 바탕이 완성된다. 두 번째는 이렇게 형성된 바탕 위에 소묘들을 가볍게 투사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 소묘는 간략한 사생이나 특징만으로 포착된 밑그림 정도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그 자체로 규정적이거나 결정적인 대신 스스로를 열어놓았다는 의미로서 소묘다. 그러므로 그의 소묘들이 바탕의 문맥을 교란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지의 최소한의 개입, 가뿐하고 투명한 신체, 바탕의 시간성 위로 슬쩍 얹혀지기... 문인상의 소묘가 그려지는 방식이다.

 

반추(反芻)의 장, 신화와 전설로의 변화 -문인상의 세 번째 개인전에 부쳐

   오세권(미술평론가) 

'90년대에 있어 한국화의 변화는 주제나 표현방법에 있어 획일 보다는 작가들의 개인적 특성에 맞는 다양한 표현방법의 확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주제의 폭넓은 확대와 다양한 표현방법은 한국화 부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90년대의 상황은 '70'80년대를 이어오는 상황들에 연결된 변화이다. 즉 '70년대는 이전에 이어오던 한국화의 전통을 수묵 중심으로 획일화시키는 시기였다면 '80년대는 고려불화, 조선민화 등에서 나타나는 채색의 전통성을 한국화의 원형 내지는 근원으로서 획일화시키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제 '90년대는 수묵과 채색표현이라는 획일에서 벗어나 서구 포스트 모더니즘 영향에 다름아닌 복합적 화면의 구조와 오브제 그리고 거칠은 화면의 표현과 주제의 확장된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기를 넘어가는 지금에 있어서도 한국화의 중심적 방향성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제시는 확실하지 않다. 오직 폭넓은 조형 표현의 끊임없는 실험성에 그 가능성이 맡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 표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다양한 표현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통성'에 대한 논의가 깊게 자리잡고 있어 마치 이전의 전통방식에서 벗어나면 이질적인 것으로 되고 이전 방식을 답습하면 구태의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구태의 답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험적 작품을 하더라도 이전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표현방식을 모두 습득하여야만 그 뿌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작가적 역량이 전승되어 내려오는 표현방식을 모두 습득하여야만 그 뿌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작가적 역량이 인정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동시대 미술문화의 변화에 맞는 자기변신도 동시에 이루어 나가야 하는 이중적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과제인 것이다. 「문인상」도 이에 다르지 아니하다. '80년대 후반기부터 각종 그룹전을 통하여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에게는 동시대 한국화의 방향성 설정에도 맞추어야 하고 개인적 작품세계도 형성하여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세계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변화해 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문인상」을 보면 이러한 과정이 뚜렷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는 '80년대 한국 사회변화에 다름아니게 '80년대에 발표된 그의 작품은 사회현실을 표현하는 변모를 보이고 '90년대에 들어서는 또다시 새로운 경향으로 탈바꿈 하고 있는 것에서 이러한 경향은 드러난다. 

「문인상」의 작품변화 과정을 보자. 「문인상」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영향이 컸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남농 허건의 화실에 아버지를 따라 자주 갔었고 그로 인하여 그는 자연스럽게 그림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수업한 것은 고등학교에서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의 계속되는 낙방은 그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 주었고 그림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대학원까지 졸업하여 전문인으로서 폭 넓은 미술표현방법들을 실험하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이러한 작가로서 삶의 변화속에서 그의 작품경향도 함께 바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먼저 고등학교 시절에 미술인으로 입문하였지만 그 당시 작품을 보면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이미 기성세대만큼이나 성숙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당시는 대개 주변에서 보여지는 풍경이나 전통산수를 기반으로 하여 작품을 하였음을 볼 수 있다. 
곧이어 대학에서의 공부는 그에게 많은 작품의 변화를 주었는데 당시 '80년대의 한국현실에 다름아니게 인간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표현하는데 전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한국 미술문화가 리얼리즘 미술에 고무된 양상에 다름 아닌 표현들이었는데 '삶반추의 장' 시리즈로 판자집 풍경, 시장에서 물건 파는 아주머니들, 소외된 노인들. 광부의 표정. 버스나 전철 속의 서민 모습들을 왜곡화하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해 내었던 것이다. 이는 고등학교 시절의 수묵을 통한 풍경산수를 그려낼 때와는 다른 수묵과 채색 그리고 두터운 화면처리를 통하여 사회현실을 나타낸 새로운 화면의 시도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당시 한국화 분야에서는 '70년대 수묵이 중심이던 경향이 '80년대에 들어서 채색중심으로 변화되는 상황에 다름아니며 그가 표현한 화면도 수묵을 통하여 표현하던 화면이 채색으로서 나타나고 있어도 시대적 변화에 부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90년대에 들어 「문인상」의 작품세계는 또다시 그 변화를 시도한다 '80년대 사회변화에서 겪었던 자신의 주변적 이야기가 '90년대에서는 서서히 소멸되고 지연을 화면에 도입시키는 '반추의 장'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비판적으로 왜곡된 화면들이 다소 관조의 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 가운데 최근 들어 문인상의 작품세계는 '신화와 전설을 표현'하는 주제로 전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세계는 현실참여적 반추의 세계 즉 현실 참여적인 '되돌아보는 삶'에서 신화 전설적 의미가 나타나는 반추의 작품세계에로 바뀌고 있음을 볼 극 있다. 이러한 작품의 특징을 살펴보자. 

· 반추(反芻)의 세계
「문인상」작품에 있어 대부분 주제전개는 반추의 세계이다. 즉. '되돌아보는 삶'을 표현한 것인데 말하자면 '지나간 일상'인 것이다. 그러한 일상적 표현을 이전에는 사회현실에서 나타나는 왜곡적 현실을 표현하였지만 근간에 들어 그의 시각은 대체로 자연과 어울리는 일상을 담고 있다. 이는 그가 설정한 화면들이 자연풍경 속에 소나무, 대나무, 바위, 달, 산, 연꽃, 구름 그리고 동물인 닭이 나타나 서로 조화되는 내용의 화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제내용이 이전에 그려내던 현실구조에서 자연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왜곡된 인물을 통하여 보여주던 반추의 일상성과는 달리 자연의 도입을 통하여 주변성이 다르게 나타난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전의 이미지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가끔 남아있는 인체들의 모습과 표정들에서 이전에 표현하던 무거운 삶의 주제가 아직도 부분적으로 드러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도입한 자연은 관조적 자연이 아니라 세월이 담겨있으며 역사가 담겨있다. 이는 우리 토속적 정서의 상징체중 하나인 소나무나 닭이 울음 우는 모습. 달이 있는 야경 속에서 보여지는 정자 등은 우리가 살아온 토속적인 역사의 부분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근간에 표현하는 반추의 장인 자연의 도입에 있어서는 토속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구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화 전설의 표현
「문인상」의 작품에서 그 소재가 확장됨을 볼 수 있다. 이전의 인간모습과 표정의 왜곡 그리고 소나무와 닭의 중심소재에서 이번에는 운주사의 석불들을 더하여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에 대하여 그는 "고향주변에서 만날 수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소박하며 우리의 참된 모습들이 부처의 모습으로 상징화시켜 나타낸 곳이 운주사의 돌부처 무리입니다. 특히 천 개의 돌부처들이 모여 부처의 세계를 논하고 중생의 세계를 논하는 돌부처들의 모임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운주사의 돌부처님들이나 탑에서는 엄숙한 전형적 형식이 없습니다. 오직 외롭고 지친 우리들의 모습과 이웃간의 정다운 모습, 부모님, 친구들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수십기에 불과한 부처와 탑파들이지만 그 조성의 시대를 생각하여 세월들과 같이 보낸 운주사에 얽힌 신화와 전설을 상상하면서 저의 그림소재로서 차용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운주사 돌부처를 소재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지나간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어 운주사의 돌부처 뿐 아니라 그 외 소재 그리고 그의 작품전체에서 흐르는 근작 '반추의 장'은 결국 우리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역사적 사실들을 동시대에 재해석하여 나타내어 조형적으로 구성하며 나아가 역사적 산물로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가 있다 즉, 「문인상」이 꾸며놓은 신화 전설의 세계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가 표현하는 소나무 소재에 있어서도 우리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신화와 전설이 은유화되어 있다. 소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이 땅의 역사에 대한 상징적인 이미지로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즉, 소나무는 과거로부터 우리의 전국토에서 산재하고 있으며 마을 어디에서나 항상 소나무를 보고 자라온 우리들에게는 선조들 삶의 정서가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문인상」이 소나무를 우리 역사의 상징체로서 화면에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나무를 소재로 하여 펼쳐낸 화면에서는 주변 소재들이 같이 등장함을 볼 수 있다. 닭, 대나무, 와당, 말, 바위…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소나무 소재의 이미지는 우리조상들의 신화와 전설이 상징화되어 나타나는 것인데 바로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역사적 의미로서 신화·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가 표현한 화면처리를 보면 형식면에 있어서는 한 화폭에 하나의 주제가 드러나고 있는 것도 있으며, 또 크게 구획을 지워 이중적 화면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 화면은 다양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에 이용된다. 
··신화 전설의 표현
「문인상」의 작품에서 그 소재가 확장됨을 볼 수 있다. 이전의 인간모습과 표정의 왜곡 그리고 소나무와 닭의 중심소재에서 이번에는 운주사의 석불들을 더하여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에 대하여 그는 "고향주변에서 만날 수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소박하며 우리의 참된 모습들이 부처의 모습으로 상징화시켜 나타낸 곳이 운주사의 돌부처 무리입니다. 특히 천 개의 돌부처들이 모여 부처의 세계를 논하고 중생의 세계를 논하는 돌부처들의 모임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운주사의 돌부처님들이나 탑에서는 엄숙한 전형적 형식이 없습니다. 오직 외롭고 지친 우리들의 모습과 이웃간의 정다운 모습, 부모님, 친구들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수십기에 불과한 부처와 탑파들이지만 그 조성의 시대를 생각하여 세월들과 같이 보낸 운주사에 얽힌 신화와 전설을 상상하면서 저의 그림소재로서 차용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운주사 돌부처를 소재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지나간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어 운주사의 돌부처 뿐 아니라 그 외 소재 그리고 그의 작품전체에서 흐르는 근작 '반추의 장'은 결국 우리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역사적 사실들을 동시대에 재해석하여 나타내어 조형적으로 구성하며 나아가 역사적 산물로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가 있다 즉, 「문인상」이 꾸며놓은 신화 전설의 세계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작가노트1

산수나 화조로 상징되는 한국화가 자연주의를 넘어 시대와 역사의 삶을 담아내려는 명실상부한 현대 한국화로 발돋음한 것은 80년대적 상황의 산물로 평가되어 오고 있다. 즉 이는 비단 수묵이나 지필이라는 재료의 외연 확대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지금 여기에서의 한국화의 의미를 묻은 물음으로써 제기되어진' 세계관의 해체나 재건립을 중심으로 전제되어온 보다 넓은 의미의 명제를 둘러싼 논의 산물로서 주어졌다는 것이다.

본인의 작업의 지평은 이러한 시대적 문제 제기로서의 화두로부터 연원한다. 이를 위해 초기 작품들에서는 신화나 전설의 은유로서 소나무, 닭, 석불들이 인간의 또 하나의 표정이나 상징으로서 차용되었으며, 그것은 전통의 해체적 징후를 표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세계언어'로서의 코소모폴리탄적 미술언어라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되지만, 모든 종류의 파산신고로서의 해체 또한 '현대한국의 언어' 또한 아님은 명백한 사실이라 했을 때 '역사적인 지금 여기'의 조형언어에 대한 모색이어야 했다.

그것이 본인이 궁구하고자 한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반추(反芻)의 장(場)으로서의 화면이다. 반추의 기획(project)은 시간적 축과 공간적 축의 두 계열 점들로서 축조된다. 먼저 그것은 시간적 축을 통해서는 뿌리 혹은 원근법적 시간으로서의 사물에 대한 자명한 이해를 거부하고 분할하는 화면구성으로 나타난다.

이는 형태 분석적인 사물의 재배열을 통해 시각의 풍경이 아닌 '시간적 상상력의 풍경'으로 전치(傳置)되거나 혹은 비현실적인 사물의 원형이 분할적으로 보여지기 위한 전략적 배려로서 고안되었다. 이를 통해 역사적인 시간과 '나'의 현실적인 시간은 '상호 신체적'인 지평 속에서 만날 수 있고, '나'의 반추는 '우리'의 반추로 화(化)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간적 축은 물리적 외부 공간과 마음의 구조로서의 내면 공간과의 집면으로 구축된다. 그것은 '집단 무의식'에 가까운 원형으로서 민족적 경험의 총체라는 시원의 지점에서 만난다. 예컨대 직관이나 오성을 통해 표상되는 신체의 지각이라는 현존재의 공간은 '본다'는 행위 자체에 내속되어 있는 '시각적 판단'이 이미 개입되어 있다는 중첩된 공간 개념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추의 장'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즉 이러한 각각의 계열들이 근원적인 동일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변화 가능한' 속성과 공간의 '광대 무변한' 속성들 속에 내던져진 물질들의 생성원리리로서의 공(空)의 모습이며, 그것이 본인의 '여백'에 대한 지향점으로 요약된다.

때로는 우람한 선지자 같은 소나무로 때로는 이름없는 들풀들로 의인화되는 역사와 자연의 유기체성인 것이다. 유기체체이되 무기체의 속성을 끝없이 환기하는 회귀(回歸)로서의 끝나지 않을 과정적 행위, 이는 '그림 그리기'로서의 끝나지 않을 본인의 회화에 대한 원론적 질의사항이기도 하다. 예컨대 그림그리기로서의 한국화의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 물음으로써의 한국화의 지평은 또하나의 본인의 회화적 태도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본인의 논리적 귀결은 '여백', 즉 시공간적 계열들의 회류(回流)의 지점으로서의 여백에 대한 탐구에 당도해 있다. 그것은 서양화의 어법으로 얘기하면 사실에 바탕을 두거나 대상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지고 매체의 자율성에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것, 즉 "형(形)을 구차히 않고 뜻(意)을 구한다"는 뜻일진대, 그것이 형상들을 넘어서 있는 원형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본인의 연구 목표이면서 과제임도 엄밀한 사실로 전제되고 있다.

문인상 關我軒에서 

작업노트2

美的 사고를 통한 하루

겨울을 맞이하기 전 늘 난, 어릴 적의 겨울을 먼저 생각해 본다.
연날리기, 눈싸움, 얼음치기…
그렇게도 겨울의 무서움(?)에도 별로 굴하지 않았던 시절을…
그렇지만 올 겨울은 아무런 대책 없이 맞이해 버렸다.
새해가 되면 곧 나를 알리는 전시회 몇 건이 있기에 온통 머리 속이
'그림'이라는 주제로 가득 메워져 언제 겨울이 왔는지도 모르게
허무하게 겨울을 맞이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게만 느껴진다.
내리는 눈도 별로 반갑지도 않고…
그래도 날 유난히 반겨주는 것은 이 공간에 저 아름다운 자태로
곧게 뻗은 난초이다. 유일한 생명력을 가진…
하지만 곧 난 가슴 아픔에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저 난초가 자신을 생을 끝내기 위해 이미 뿌리부터 삶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보여지는 모습은 그렇게도 아름답지만… 

·새해 둘째 날 솔잎 한 뭉치를 샀다.
우연한 기회에 솔잎차를 먹어본 후 그 맛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물어 솔잎을 구했다.
끓이기도 너무 쉽고 맛도 근사해서… 하지만 솔잎은 반드시 새순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 겨울에 난 귀중한 것을 또 내 것으로 만들었다.
세상에 무엇 하나도 소중하지 않을 것이 없다.  

·소나무를 그리고 닭을 그리고 말을 그린다.
해가 있었고 달이 있었고 구름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있는 것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 오래 전부터 내게 있었다.
그것에 대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난, 늘 그것들에 대해서 방관적이기를 원한다.
그것이 가장 내 것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사랑을 많이 담아 버린 것에 대해서는 욕심이 많이 보인다.
그림에게도 적당한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모자른 듯 하면서도 채워져야 그림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차례가 있고 순리가 있듯이…
그렇게 올 겨울의 반은 내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보냈다.
입춘이 지난지도 꽤 되었지만 여전히 동장군을
이곳에 무얼 더 두고 가고 싶은지… 

·돌부처를 그린다.
부처를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이미 부처가 된다.
아무 말 없이 온화한 표정을 갖고 있는 저 돌부처,
난 돌부처의 저 표정 있는 얼굴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다.
합장을 하며 서 있는 저 모습을 난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