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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추(反芻)의 장, 신화와 전설로의 변화 -문인상의 세 번째 개인전에 부쳐

   오세권(미술평론가) 

'90년대에 있어 한국화의 변화는 주제나 표현방법에 있어 획일 보다는 작가들의 개인적 특성에 맞는 다양한 표현방법의 확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주제의 폭넓은 확대와 다양한 표현방법은 한국화 부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90년대의 상황은 '70'80년대를 이어오는 상황들에 연결된 변화이다. 즉 '70년대는 이전에 이어오던 한국화의 전통을 수묵 중심으로 획일화시키는 시기였다면 '80년대는 고려불화, 조선민화 등에서 나타나는 채색의 전통성을 한국화의 원형 내지는 근원으로서 획일화시키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제 '90년대는 수묵과 채색표현이라는 획일에서 벗어나 서구 포스트 모더니즘 영향에 다름아닌 복합적 화면의 구조와 오브제 그리고 거칠은 화면의 표현과 주제의 확장된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기를 넘어가는 지금에 있어서도 한국화의 중심적 방향성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제시는 확실하지 않다. 오직 폭넓은 조형 표현의 끊임없는 실험성에 그 가능성이 맡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 표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다양한 표현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통성'에 대한 논의가 깊게 자리잡고 있어 마치 이전의 전통방식에서 벗어나면 이질적인 것으로 되고 이전 방식을 답습하면 구태의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구태의 답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험적 작품을 하더라도 이전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표현방식을 모두 습득하여야만 그 뿌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작가적 역량이 전승되어 내려오는 표현방식을 모두 습득하여야만 그 뿌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작가적 역량이 인정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동시대 미술문화의 변화에 맞는 자기변신도 동시에 이루어 나가야 하는 이중적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과제인 것이다. 「문인상」도 이에 다르지 아니하다. '80년대 후반기부터 각종 그룹전을 통하여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에게는 동시대 한국화의 방향성 설정에도 맞추어야 하고 개인적 작품세계도 형성하여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세계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변화해 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문인상」을 보면 이러한 과정이 뚜렷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는 '80년대 한국 사회변화에 다름아니게 '80년대에 발표된 그의 작품은 사회현실을 표현하는 변모를 보이고 '90년대에 들어서는 또다시 새로운 경향으로 탈바꿈 하고 있는 것에서 이러한 경향은 드러난다. 

「문인상」의 작품변화 과정을 보자. 「문인상」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영향이 컸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남농 허건의 화실에 아버지를 따라 자주 갔었고 그로 인하여 그는 자연스럽게 그림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수업한 것은 고등학교에서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의 계속되는 낙방은 그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 주었고 그림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대학원까지 졸업하여 전문인으로서 폭 넓은 미술표현방법들을 실험하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이러한 작가로서 삶의 변화속에서 그의 작품경향도 함께 바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먼저 고등학교 시절에 미술인으로 입문하였지만 그 당시 작품을 보면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이미 기성세대만큼이나 성숙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당시는 대개 주변에서 보여지는 풍경이나 전통산수를 기반으로 하여 작품을 하였음을 볼 수 있다. 
곧이어 대학에서의 공부는 그에게 많은 작품의 변화를 주었는데 당시 '80년대의 한국현실에 다름아니게 인간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표현하는데 전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한국 미술문화가 리얼리즘 미술에 고무된 양상에 다름 아닌 표현들이었는데 '삶반추의 장' 시리즈로 판자집 풍경, 시장에서 물건 파는 아주머니들, 소외된 노인들. 광부의 표정. 버스나 전철 속의 서민 모습들을 왜곡화하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해 내었던 것이다. 이는 고등학교 시절의 수묵을 통한 풍경산수를 그려낼 때와는 다른 수묵과 채색 그리고 두터운 화면처리를 통하여 사회현실을 나타낸 새로운 화면의 시도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당시 한국화 분야에서는 '70년대 수묵이 중심이던 경향이 '80년대에 들어서 채색중심으로 변화되는 상황에 다름아니며 그가 표현한 화면도 수묵을 통하여 표현하던 화면이 채색으로서 나타나고 있어도 시대적 변화에 부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90년대에 들어 「문인상」의 작품세계는 또다시 그 변화를 시도한다 '80년대 사회변화에서 겪었던 자신의 주변적 이야기가 '90년대에서는 서서히 소멸되고 지연을 화면에 도입시키는 '반추의 장'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비판적으로 왜곡된 화면들이 다소 관조의 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 가운데 최근 들어 문인상의 작품세계는 '신화와 전설을 표현'하는 주제로 전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세계는 현실참여적 반추의 세계 즉 현실 참여적인 '되돌아보는 삶'에서 신화 전설적 의미가 나타나는 반추의 작품세계에로 바뀌고 있음을 볼 극 있다. 이러한 작품의 특징을 살펴보자. 

· 반추(反芻)의 세계
「문인상」작품에 있어 대부분 주제전개는 반추의 세계이다. 즉. '되돌아보는 삶'을 표현한 것인데 말하자면 '지나간 일상'인 것이다. 그러한 일상적 표현을 이전에는 사회현실에서 나타나는 왜곡적 현실을 표현하였지만 근간에 들어 그의 시각은 대체로 자연과 어울리는 일상을 담고 있다. 이는 그가 설정한 화면들이 자연풍경 속에 소나무, 대나무, 바위, 달, 산, 연꽃, 구름 그리고 동물인 닭이 나타나 서로 조화되는 내용의 화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제내용이 이전에 그려내던 현실구조에서 자연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왜곡된 인물을 통하여 보여주던 반추의 일상성과는 달리 자연의 도입을 통하여 주변성이 다르게 나타난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전의 이미지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가끔 남아있는 인체들의 모습과 표정들에서 이전에 표현하던 무거운 삶의 주제가 아직도 부분적으로 드러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도입한 자연은 관조적 자연이 아니라 세월이 담겨있으며 역사가 담겨있다. 이는 우리 토속적 정서의 상징체중 하나인 소나무나 닭이 울음 우는 모습. 달이 있는 야경 속에서 보여지는 정자 등은 우리가 살아온 토속적인 역사의 부분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근간에 표현하는 반추의 장인 자연의 도입에 있어서는 토속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구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화 전설의 표현
「문인상」의 작품에서 그 소재가 확장됨을 볼 수 있다. 이전의 인간모습과 표정의 왜곡 그리고 소나무와 닭의 중심소재에서 이번에는 운주사의 석불들을 더하여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에 대하여 그는 "고향주변에서 만날 수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소박하며 우리의 참된 모습들이 부처의 모습으로 상징화시켜 나타낸 곳이 운주사의 돌부처 무리입니다. 특히 천 개의 돌부처들이 모여 부처의 세계를 논하고 중생의 세계를 논하는 돌부처들의 모임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운주사의 돌부처님들이나 탑에서는 엄숙한 전형적 형식이 없습니다. 오직 외롭고 지친 우리들의 모습과 이웃간의 정다운 모습, 부모님, 친구들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수십기에 불과한 부처와 탑파들이지만 그 조성의 시대를 생각하여 세월들과 같이 보낸 운주사에 얽힌 신화와 전설을 상상하면서 저의 그림소재로서 차용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운주사 돌부처를 소재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지나간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어 운주사의 돌부처 뿐 아니라 그 외 소재 그리고 그의 작품전체에서 흐르는 근작 '반추의 장'은 결국 우리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역사적 사실들을 동시대에 재해석하여 나타내어 조형적으로 구성하며 나아가 역사적 산물로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가 있다 즉, 「문인상」이 꾸며놓은 신화 전설의 세계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가 표현하는 소나무 소재에 있어서도 우리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신화와 전설이 은유화되어 있다. 소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이 땅의 역사에 대한 상징적인 이미지로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즉, 소나무는 과거로부터 우리의 전국토에서 산재하고 있으며 마을 어디에서나 항상 소나무를 보고 자라온 우리들에게는 선조들 삶의 정서가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문인상」이 소나무를 우리 역사의 상징체로서 화면에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나무를 소재로 하여 펼쳐낸 화면에서는 주변 소재들이 같이 등장함을 볼 수 있다. 닭, 대나무, 와당, 말, 바위…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소나무 소재의 이미지는 우리조상들의 신화와 전설이 상징화되어 나타나는 것인데 바로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역사적 의미로서 신화·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가 표현한 화면처리를 보면 형식면에 있어서는 한 화폭에 하나의 주제가 드러나고 있는 것도 있으며, 또 크게 구획을 지워 이중적 화면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 화면은 다양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에 이용된다. 
··신화 전설의 표현
「문인상」의 작품에서 그 소재가 확장됨을 볼 수 있다. 이전의 인간모습과 표정의 왜곡 그리고 소나무와 닭의 중심소재에서 이번에는 운주사의 석불들을 더하여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에 대하여 그는 "고향주변에서 만날 수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소박하며 우리의 참된 모습들이 부처의 모습으로 상징화시켜 나타낸 곳이 운주사의 돌부처 무리입니다. 특히 천 개의 돌부처들이 모여 부처의 세계를 논하고 중생의 세계를 논하는 돌부처들의 모임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운주사의 돌부처님들이나 탑에서는 엄숙한 전형적 형식이 없습니다. 오직 외롭고 지친 우리들의 모습과 이웃간의 정다운 모습, 부모님, 친구들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수십기에 불과한 부처와 탑파들이지만 그 조성의 시대를 생각하여 세월들과 같이 보낸 운주사에 얽힌 신화와 전설을 상상하면서 저의 그림소재로서 차용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운주사 돌부처를 소재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지나간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어 운주사의 돌부처 뿐 아니라 그 외 소재 그리고 그의 작품전체에서 흐르는 근작 '반추의 장'은 결국 우리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역사적 사실들을 동시대에 재해석하여 나타내어 조형적으로 구성하며 나아가 역사적 산물로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가 있다 즉, 「문인상」이 꾸며놓은 신화 전설의 세계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