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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
삶  그 시도 그리고 반추
김 은 영(불문학박사)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감상하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시도될 수 있겠지만 문인상 작품의 특성을 고려하여 전체적인 조망에서 개별적인 조망으로 서술해 나가고자 한다. 문인상의 미학 세계는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가 획을 긋고 있다. 이 획은 변천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 그의 초기 작품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인 환경과 개인적인 현실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연계성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 그가 그려낸 인물의 군상들은 일제히 시선을 밑으로 향하거나 그 방향을 허공에 두고 있다. 사물을 응시하지 않는 시선‥‥ 현실 도피인가 아니면 보지 못하는 소경의 이마쥬? 아니면 차마 즉시할 수 없는 현실의 아이러니인가?
그 당시 그가 그린 모든 삶의 장들과 서민의 모습들은 사실주의화되어 절망의 늪에서 달음질칠 수도 없는 정지된 표현의 무대였다. 혼돈의 시대에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한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와 같은 그의 표현의 장들이 93년부터 자연을 소재로 한 상징적인 오브제들을 등장시킴으로 서서히 내면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작가 내면의 정서, 주관적으로 해석해 보려는 삶 그 자체가 주제가 되어 여러 가지 다양한 흐름을 지금까지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해마다 '삶반추의 장'은 새로운 발견을 거듭하고 있다.  

이 새로운 오브제들말, 학, 닭과 소나무와 달은 인간에서 회자되었던 그 상징적인 의미 체계와 또 작가 자신이 이 대상들에게 부여한 의미와 함께 작품을 더욱 다양화시키고 복합적인 구성으로 개별화시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반추의 장'은 새로운 소재들과 더불어 그의 삶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소나무의 푸른 잎을 보자, 그 빽빽한 잎은 사시사철 늘 푸른 모습을 간직한 채 새로운 싹을 내보내고 있다.
그 잎새 하나 하나가 피어있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그 모양새가 제각기 들쑥날쑥하다.
작가는 이 모습 하나하나에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터가 박혀 있다고 한다. 인생이 굴곡과 고통을 통한 자아의 모습이 거기에 배어 있다고 했다. 특히 '백송'을 통하여서는 줄기가 하얗다는 점을 들어 '원초적인 무(無)에서의 출발' 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점에서 다소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는 무(無)에서 생명으로의 반전을 주지해보자. 들의 풀이나 작은 꽃들, 민들레 등의 소재는 경이로운 '생명력'에 대해 작가의 내면의식을 표출했다. 너무나도 작아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면면히 그 자태를 드러내며 문득 우리의 시야에 꽃이듯 들어오는 그들의 존재는 땅에 깃든 축복에 대해 감탄을 터트리게 한다. 여기서 주의를 끄는 점은 이러한 소재들의 등장이 결코 근거 없는 갑작스런 출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배경이 되는 구름이나, 산, 바위 등 그 원형의 근원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돌출 된 하나의 표징이라 할 수 있다. 존재의 공간이 되는 이러한 배경들은 인간의 최초의 거주지, 즉 어머니의 태내를 상징하는 생명의 틀이며 영혼의 이마쥬이자 이야기의 출발이 된다.
수레바퀴의 삶속에서 본능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그곳은 영원의 안식이 깃든 곳이리라. 그것은 곧 작은 생명체를 발견하고 그 본질을 찾아보려는 작가의 탐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문인상의 화폭에 담긴 '삶반추의 장' 연작들은 내면 세계의 의식의 흐름을 그림이란 '창'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접근시킨다.   

때론 그 그림속에서  비록 그림이란 공간으로서밖에 전재하지 않지만  시간의 흐름과 리듬을 읽을 수 있다. 이미 화선지를 여러 겹 구기거나 포개어 접착시키기도 하고 먹과 아크릴, 과슈 등을 이용하여 중첩된 밑그림을 표현화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상의 확장은 화면 분할을 통하여 더욱 시간성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의 시간을 현재화하기도 하며 화면을 통하여 이마쥬와 이야기와 구성을 재생시키기도 한다. 이점에서 다소 작품의 세밀한 짜임새가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